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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석 세상 돋보기] 국가와 국민, 그 명제는 존엄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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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1 13:13 7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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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 그 명제는 존엄으로부터... 

                                                                                                                                                                                                      518aae6b6b25c9ed9eb1d8cd25b93c91_1584769596_4888.jpg   

                                            배문석 

                                        (시인, 문학과학통섭포럼 상임대표)   


 

 

요즘 딱히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걸핏하면 국가를 대변하는 것처럼 외양만 포장된 집단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게 된다. 또 다른 일각에서 자신의 존재를 좀 돋보이려는 일탈들이 국가란 말을 인용해 입에 올리고 있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존재하고 국민은 국가로부터 세포의 역할을 맡는다. 

이것이 나와 나라와의 관계설정이다. 따라서 국가의 기틀을 지키는 헌법정신에 우리는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가를 빙자하는 태도도 그렇거니와 국민이란 말로 드러내놓고 갑질하는 꼴도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행위나 행동들은 다분히 작위적이라 여겨지지만 다수의 사회적 유기성을 지닌 주요 구성원을 상대로 대놓고 나만 옳다는 식의 주장은 거의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때는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이 ‘내 탓이요’란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고 사회운동을 펼쳐 큰 호응을 얻은바 있다. 이 운동의 본질은 잘해도 못해도 내 탓을 먼저 마음으로 헹구어 내면 좀 더 넓은 시야가 열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화합과 이해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사람이 됐든 사물이 됐든 주어진 영역에서 발붙이고 사는 이상 그 영역의 틀에 수용되지 않으면 곧 그 범주무리로부터 배척되거나 아니면 소멸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거기에 조성된 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망에서 소외되면 끝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너와 내가 속한 지경도 똑 같은 이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국가다. 한 나라를 지칭하는 국가는 존엄의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그에 속한 국민이라면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주체적인 자아와 그 주체를 수용하는 국가는 여타국가와는 확연히 경계가 분명하다. 

그 경계의 벽이 때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비화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배우고 보아왔다. 살육의 현장으로 나가는 적성국의 적들도 나름의 철학을 지니고 전장에 임했을 것이고, 전쟁을 수행해야하는 이유는 그 나라의 국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국가의 존엄을 위해, 아니 그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죽음도 불사했을 것이다. 그만큼 국가와 나란 존재는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진 하나의 동체가 틀림없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 동체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은 몇 가지만 확실하면 동체로 융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 국가의 국민이라면 국가가 내게 보장하는 헌법적 권리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자유권(직업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권리), 사회권(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 참정권(누구나 국가 정책이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평등권(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받지 않을 권리), 청구권(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하여 국가에 대해 일정한 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이 있다. 

반면에 국가가 내게 요구하는 헌법적 의무는 교육의 의무(국민은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 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 환경 보전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국가와 국민은 환경을 잘 가꾸며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 국방의 의무(국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 근로의 의무(국가는 근로자의 고용과 적정 임금의 보장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고, 국민은 근로의 의무), 납세의 의무(국민은 나라의 살림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세금을 내야 할 의무)가 있다. 동체로써 권리와 의무를 다할 때 국가는 국민을 존엄의 으뜸으로 받들게 되며, 국민은 국가의 부름에 언제나 흔쾌하게 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명의 역사 가운데 국가가 무너졌을 때 거기에 속했던 국민들이 겪는 삶의 궤적은 너무나 비참하고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는 일을 당하기 십상이다. 

가까이는 우리의 식민의 역사인 일제침략시대가 그랬고, 지금도 독립을 외치는 민족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들이 왜 독립을 외치겠는가? 국가 없는 국민들이 겪는 삶의 본질은 열악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실 우리 사회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아니 집단들이 별별 이유와 주장을 펼치며 1인 시위나 집단시위를 벌이고 있는가, 우리는 이런 현장을 수없이 목도한 경험이 있다. 이런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현상만 보아도 얼마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지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주장들이나 시위도 국가가 있기 때문이며 그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국가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며 집단 시위를 하거나 개인적인 주장을 펼쳤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100이면 100 그에 속한 나라의 불법행위로 처벌 받기 십상일 것이며 심하면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는 참형을 받지 않을까 여겨진다. 국가가 있다면 국가의 국민이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힘이고 국력에 의한 자국민 보호를 지키는 외교라는 지혜다. 

국가도 국민도 그 영역내의 유일한 존엄한 주체다. 존엄이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만 옳다는 주장으로 일관해서도 아니 되고 껍데기뿐인 속물근성으론 더군다나 안 될 일이다. 존엄의 사전적 의미는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함부로 범할 수 없이 높고 엄숙함’이라 정의하고 있다. 정말 내가 존엄한 존재인가, 국가에 대한 존엄을 공손히 받들고 있는가? 사회적 정의에 곰곰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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