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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론] 윤동주 로드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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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5:45 3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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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헤는 시인. 윤동주는 아직도 어디에선가 별을 헤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할지 말지를 몇 번 번복했다가 결행한 일본행. ‘교토’ ‘후쿠오카’ 에서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짚어보는 ‘윤동주 로드맵-1’ 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우리 일행은 간사이 공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건너오고 오사카 도톤보리 옆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아침 일찍 교토로 이동했다. 교토에서는 나고야에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신칸센을 타고 온 엄선생과 교토에 있는 불교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는 윤동주 전공자인 박선생과 합류하였다. 박교수가 시간을 내서 우리 일행을 교토의 도시샤대학과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던 현재의 교토조형예술대학 앞, 우지시 우지강변 등으로 윤동주의 시비들이 있는 곳을 안내해주었다.

도시샤 대학 정문에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윤동주 시비를 보면서 참많이 마음이 저렸다. 

시비는 윤동주를 상징하는 ‘서시’ 가 우리말과 일본말로 나란히 적혀있었다. 번역문 중 몇 자가 거슬려 쓴약처럼 입안에 고이는 것이 있었지만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울대를 넘겨보냈다.

나란히 있는 정지용 시비 또한 먼저 아련한 통증을 느끼면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문학 특히 시문학에 별과 같은 두 시인의 시비를 바라보면서 어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라 없는 서러움.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바 없는 같은 하늘, 같은 기후에도 뼛속까지 허허로웠을 두 별을 만났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는 마음을 억지로 접으면서 교토조형예술대학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보로 40분은 족히 된다는 거리. 이제는 윤동주가 기거했던 하숙집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 예술대학이 세워져 있었다. 어쩌면 윤동주와 예술적 맥락이 있는 일인지... 삭막했으리라고 짐작되는 1940년대의 그 거리를 유약한 젊은이 윤동주는 어떤 기분으로 걸었을까. 

조형예술대학은 동네 가운데 있었다. 입구에 윤동주 시비가 있어서 설립자가 무조건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단정해버렸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소신 있는 사람은 어디서나 오래도록 빛을 내는 또 하나의 진정한 별이 되는 것을...

뒤이어 한 시간 가량 차를 달려 우지시 우지 강변에 있는 윤동주 시비를 찾아갔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2017년에 세웠다는 우지강변의 윤동주 시비는 그의 시 ‘새로운 길’ 이 새겨져있지만 ‘기억과 화해의 비’ 라고 기단에 새겨져있었다. 그 중 ‘기억’만 가슴에 담았다.

우지 강변에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진 것은 그가 체포되기 얼마전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야유회를 갔었고 지금도 골짜기인 그곳 ( 현재 댐공사가 한창임) 에서야 들을 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한국 노래를 한곡 불렀다는 애달픈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 한다.

평범한 청년 윤동주는 이곳을 다녀간 후 2,3개월 뒤에 불령선인이라는 죄목을 쓰고 일경에 의해 잡혀가고 결국에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세 곳을 둘러보면서 일본의 공무원이나 일본인들의 온갖 핑계의 거절과 반대를 무릅쓰고 무려 14년 동안 애쓴결과 마침내 시비 건립의 뜻을 관철시킨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 우지시를 떠났다.

오사카성 야경이 코앞에서 보이는 방에 하룻밤 여정을 내려놓았다. 

성의 안팎으로 불을 밝힌 오사카성의 경치가 장관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위업을 자랑하는 오사카성. 따지고 보면 도쿠가와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임진왜란을 일으킬 때 갖은 이유로 그에게 동조하지 않고 일본에 남아서 세력을 키운 야망가 아닌가. 

알고 보면 일본은 우리나라 덕을 참 많이 보고 있다. 그래서 ‘기억과 화해’ 중 기억만 남기자고 마음이 조르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일본으로 가서 소식이 끊어지고 결국엔 불귀의 객이 된 두 아들 생각만 나면 가슴을 치시며 우시던 할머니 생각이 난다. 

인면수심... 새빨간 거짓말과 회유로 속이던 무리들을 위해 옛 선현이 남긴 말이다.


김귀희 

(시인, 문학박사·수필시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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